飛山4洞 202-1番地 遺蹟 發掘調査 結果 報告書 - 영남대 박물관 99.11 :: 2006/03/30 20:49

 


     

   
飛山4洞 202-1番地 遺蹟 發掘調査 結果 報告書


1.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 4동 202-1번지

2) 조사기간 : 1999년 11월 15일 - 1999년 11월 30일(16일간)

3) 조사범위 : 76㎠(약23평)

4) 조사기관 : 영남대학교박물관(단장 유홍준)

2. 調査經緯

본 유적은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 4동 202-1번지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고분유적으로 이 일대는 대구의 가장 큰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본 고분군은 일제강점기부터 조사가 진행된 이래 '達西面古墳群'으로 명명되었다가 행정구역의 변동에 따라 大邱府에 편입되자 '飛山ㅑ內唐洞古墳群'으로 불리워졌다. 현재로는 이 '飛山ㅑ內唐洞古墳群' 이 전체고분군의 범위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와 주변의 達城과의 관계라는 입장에서 '達城古墳群'으로 부르자는 견해가 최근 제시되었다.

본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의 조사시 총 87기의 봉토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이 중 7기가 발굴조사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 민가가 들어서게 되어 봉토분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번 조사대상지역은 1998년 경북대박물관에 의해서 주거밀집지역 내에 소방도로구간을 발굴조사하면서 확인된 곳이다. 발굴조사는 1999년 9월 대구광역시 서구청이 영남대박물관에 조사를 요청하여 실시되었다. 본관은 서구청의 협조하에 1999년 11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결과 삼국시대 고분 5기를 확인하였다.

2. 調査內容

본 유적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고분 5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1 · 2號墓(圖版 2)

1호와 2호묘는 조사지역의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3호, 4호묘가 위치한다. 1호와 2호묘는 서로 중복되게 축조된 유구로 1호묘인 木槨墓 파괴하고 그 내부에 2호 石槨墓가 축조되었다.

1호묘는 중복된 2호묘에 의해서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서단벽과 양장벽 일부만 잔존한다. 黃褐色沙質粘土를 거의 수직으로 굴착한 墓壙은 크기가 現長 105㎝, 幅 108㎝, 남아있는 최대깊이 36㎝ 정도된다. 장축방향은 東-西(N-60°-W)向이며 墓壙을 파고 내부에 木槨을 설치한 木槨墓이다. 木槨과 墓壙사이에는 청석과 세청석편이 함유된 황갈색사질토로 充塡하였다. 내부에서는 양이부호 1점, 단경호 3점이 출토되었다.

2호묘는 전술한 바와 같이 先築된 1호 木槨墓를 파괴하고 축조된 石槨墓로 墓의 동쪽부분은 경사로 인하여 대부분 삭평되었다. 장축방향은 東-西(E-W)向이고, 현존하는 墓壙의 규모는 幅 116㎝, 남아있는 최대깊이 28㎝ 정도이며, 石槨의 규모는 現長 92㎝, 남아있는 최대깊이 26㎝이다. 현존하는 서단벽은 판석을 이용하여 수적하였는데 3개체로 파손되어 있었다. 북장벽은 청석과 천석으로 평적하여 축조하였다. 출토유물로는 耳附壺 1점 및 人骨로 추정되는 骨片이 있다.

2) 3 · 4號墓(圖版 3-4)

3호묘와 4호묘는 조사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전술한 1 · 2호묘가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5호묘가 위치한다. 3 · 4호 역시 1 · 2호묘와 동일하게 선축된 대형의 木槨墓인 3호를 파괴하고 그 내부에 4호 石槨墓가 축조되었다.

3호 木槨墓는 조사지역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상부에는 후술할 4호 석곽묘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상부의 건물에 의해서도 일부 삭평되었다. 지형상 낮은 동단벽 부분은 완전히 유실되었다. 長軸方向은 東-西(N-86°-W)向으로 등고선의 방향과 교차한다.

황갈색 사질점토층을 위가 넓고 아래가 좁게 경사지게 파서 만든 墓壙은 서단벽의 일부는 未調査되었고 동단벽은 삭평되었다. 墓壙의 크기는 現長 650㎝, 幅 260㎝, 남아있는 최대깊이 45㎝ 정도이다. 墓의 내부에는 남아있는 墓壙의 벽을 따라 50㎝ 정도 暗紫色沙質粘土가 나머지 중앙부에는 灰褐色沙質粘土가 채워져 있었다. 木槨의 크기는 充塡土의 범위가 後築된 4호 石槨墓에 의해서 파괴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바닥에서 확인된 壺의 범위로 보아 幅 120-125㎝ 정도로 추정된다. 따라서 본 墓는 墓壙의 내부에 길이는 알 수 없으나 幅 120-125㎝ 정도되는 木槨을 설치하고 이 木槨과 墓壙의 벽 사이에 暗紫色沙質粘土로 充塡하였고 木槨의 위에는 灰褐色沙質粘土로 封土를 한 대형의 木槨墓 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黃色粘土層을 편평하게 정지하였다.

出土遺物은 4호묘가 축조면서 대부분 파괴된 상부유물과 원상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하부유물로 구분된다. 상부유물은 대부분 파손되어 흩어진 채로 출토되었는데 이를 수습하여 분류 정리한 결과 양이부호 5점, 삼이부호 1점, 단경호 1점이 복원되었다. 하부유물로는 목곽의 서단벽 측과 중앙에서 양이부호 5점, 단경호 2점이, 동단벽측에서는 기대편 2점과 철모 1점, 호편 1점, 대호편 1점 총 19점의 유물이 있다.

4호묘는 전술한 3호묘를 파괴하고 축조된 石槨墓로 長軸方向은 東-西(N-82°-W)向으로 등고선 방향과 교차한다. 墓는 상부의 건물에 의하여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특히 동단벽 측은 墓壙까지 파괴되었다. 墓壙은 거의 수직으로 팠는데, 크기는 現長 360㎝, 幅 164㎝, 남아있는 최대깊이 40㎝ 정도이고 평면형태는 末角長方形으로 추정된다. 墓의 내부에는 黑褐色粘土가 채워져 있었다. 石槨은 대체로 동쪽부분이 파괴되어 없어지고 서단벽과 남북 장벽 일부만이 남아있다. 남아있는 부분은 墓壙의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川石을 평적한 것인데 상부에 평적된 돌들은 대부분 유실되고 대부분 1-3단 정도만 남아있다. 石槨의 벽면에서 황갈색점토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벽면전체를 점토로 바른 것으로 추정된다. 石槨의 바닥에는 서단벽의 일부를 제외하고 길이 10-20㎝ 정도의 넓적한 천석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는데 중앙부는 교란되어 잘 남아있지 않았으나 나머지 부분에는 정연하게 남아있었다.

출토유물로는 유개이부호, 고배 등의 土器類와 유자이기, 철촉, 철겸, 철부, 교구, 등자편의 鐵器類가 있다.

3) 5號墓(圖版 5)

본 墓는 조사지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전술한 3 · 4호묘가 위치한다. 長軸方向은 東-西(N-78°-W)向이며 등고선 방향과 교차한다. 墓는 상부 건물에 의해서 북장벽과 동단벽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내부 역시 완전히 교란되었다.

풍화암반층을 굴착한 墓壙은 북장벽과 동단벽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墓壙의 크기는 幅 154㎝, 남아있는 최대깊이 40㎝정도이다. 墓의 내부에는 黑褐色腐植土가 채워져 있었다. 石槨 역시 북장벽과 동단벽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서단벽과 남장벽의 일부만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서단벽의 경우 墓壙의 가장자리에 靑石을 평적하여 축조하였고 長壁의 경우 모서리 부근에 靑石板石이 1매씩 수적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는데 이로보아 靑石板石을 수적한 후 板石과 墓壙 사이를 靑石과 靑石片들로 채워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石槨의 크기는 幅 67㎝, 남아있는 최대깊이는 30㎝ 정도이다. 石槨의 바닥에는 3-10㎝ 정도되는 천석을 깔아 시상으로 삼았는데 교란된 墓의 중앙부를 제외하고 대체로 정연하게 노출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상부의 건물에 의해 유구 내부까지 교란됨으로서 유물들은 대부분 시상의 상부에서 교란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土器類는 蓋 1점이 출토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鐵器類인데 행엽, 등자편, 철촉, 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3. 調査成果 및 調査者 意見

본 조사를 통해 얻은 성과는 크게 아래와 같다.

첫째, 이번 조사에서 4-5世紀代 遺構와 遺物들이 조사됨으로서 이 시기의 大邱地域 사회문화상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확인하였다. 특히 3호 木槨墓의 경우 현재까지 대구지역에서 조사된 것들 중에서 가장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達城 주변지역이 일찍부터 대구지역의 中心古墳群이었음을 재삼 확인하였다.

둘째, 出土遺物로는 土器類와 鐵器類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들이 가지는 학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3호 木槨墓에서 14점이나 되는 兩耳附壺와 短頸壺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타지역과의 비교를 통하여 당시 大邱地域의 文化的 特性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셋째, 封土墳들이 분포하였던 구릉상에는 이미 民家들이 들어서 있으나 이번의 예와 같이 한옥의 목조건물의 하부에는 상당한 수의 遺構가 아직 잔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주변 지역의 극변한 형질변경이 있을 경우 반드시 사전조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대구 서구 비산4동 202-1번지 위치 및 고분들의 현재 분포지점 예상도


조사전 전경


1호 목곽묘, 2호 석곽묘 전경


3호 목곽묘


4호 석곽묘


5호 석곽묘


조사후 전경


달성고분군(비산동· 내당동 고분군) 유구 분포도 및 조사지역 위치도


유구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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