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공원, 서신로, 미싱골목 :: 2007/05/0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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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empas.com/ho2994/read.html?a=19566001)

< 일제강점기의 대구 달성공원/서문시장 인근 지도>
대구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개인블로그, 홈페이지들이 인터넷에 많이 있습니다. 개인이 소장한 사진들도 있고 어렵사리 외국에 나가서 발견한 자료나 혹은 인터넷이나 책자를 통해 찾은 사진 등을 다운로드를 받거나 스캐닝 하여 올린 자료들이 바로 그것 입니다.
위 지도는 인터넷에서 찾은 것입니다. 대구의 달성공원과 서문시장 부근인데요. 달성공원에 '대구신사'라는 한자 글씨가 씌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시대때 지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엔 정확히 '시장'이란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예전엔 이곳이 못이 있던 자리라고 들었는데 이곳을 매립해서 시장북로쪽에 있던 시장을 옮겨온 것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지도에는 벌써 이곳을 시장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봐서는 상당히 오래 전에 매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어렸을때 살았던 저희 집이자 식당이었던 '풍각관'이 있던 곳은 '시장북통'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길 오른쪽으로 골목길로 들어가면 나오는 곳입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지도에다 표시를 하라면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에 대구에서 발간된 '대구 신택리지'라는 책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시장북로(통)쪽이 예전엔 소시장, 말시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정'이라는 글씨가 써 있는 곳은 지금의 미싱골목 일대라고 생각됩니다. 지도를 보면 맨 아래 오른쪽에 해성학교라는 학교이름이 있는데 이는 첨 듣는 이름입니다. 혹시 계성학교를 말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위치상으론 비슷한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저희 가정집이 비산동에 있었는데, 지도에서 서문시장에서 주욱 내려오다 삼거리가 나오는데 (지금은 네거리) 제가 초등학생에 들어가기 전인 1964년경에는 시민극장앞 은 삼거리였습니다. 그러다 1971년경인가 새로 도로를 하나 내는데요.그 길을 서신로라 이름 붙였죠. 시민극장 앞~삼성예식장~고개를 넘어 당시 서부국민학교~경상여자상업고등학교를 잇는 큰 도로가 생겼지요. 그 공사가 어느 정도 이뤄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매우 보기드문 귀한 사진이지요.


< 공사중인 서신로 광경 - 현재 대성초등학교 및 구.삼성예식장 앞 >
이 길은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매우 넓은 도로였습니다. 사진에서 왼쪽 맨 윗부분 튀어나온 건물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대성초등학교 본관건물 지붕입니다. 제가 살았던 가정집은 사진에서 맨 왼쪽 중간지점에 약간 비탈진 길의 모습이 어두운 실루엣처럼 어렴풋이 보이는데 그 언덕길 두번째 집입니다. 기와 지붕도 보이는 것 같네요. 지붕위 기왓장 몇 개는 제가 밟아 부숴진 것입니다. TV가 잘 안나오는 날이면 지붕에 올라가 TV안테나선을 까서 새로 잇는 작업은 늘 제 몫이었거든요. 평소 손끝 하나 까딱 않던 구들목 장군이 왜 그렇게 솔선수범하는가 하면요, 제가 그때 워낙 TV광이었던지라 TV가 찌직거리거나 잘 안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누가 고치라는 소리가 없어도 어김없이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보거나 끊어진 TV선을 시커먼 전기테이프나 투명 유리테이프로 이어 감았던 것이죠. 방안에 TV화면을 확인하는 일은 누나의 몫이었고 말이죠. 덕분에 우리집 지붕 기왓장은 그럴 때마다 몇 장씩이나 깨졌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76년 때 까지 저는 이곳에서 줄곧 살았구요, 1982년에 돌아가셨던 친할머니, 누나, 여동생 그리고 둘째고모(작고)와 이모님 식구들도 모두 이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도로 오른편 주택 뒷편으로는 달성공원이 얼핏 보입니다. 이 길이 생기기 전엔 오른편으로 아주 오래된 언덕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임금님이 행차하고 한양으로 가기도한 옛날 지도에도 나오는 아주 역사가 깊은 길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곳에 살던 때는 '푸른다리거리' 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도로 위로 시발택시, 합승버스 등이 오르내리고 사람들이 차도, 인도도 제대로 구분 안된 이 길을 차와 자전거를 피해 길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 다니던 기억이 나는 먼지와 배기가스로 가득찬 아주 복잡한 길이었단 기억이 납니다. 그 '푸른다리거리'에는 병원이 하나 있었는데 병원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던 병원이었습니다. 고교1학년때 건강이 안좋아 이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위해 매일 들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길에서 미싱골목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할머니 심부름으로 가끔 가던 담뱃가게도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막걸리를 데워 드시길 좋아하셨던 할머니는 늘 곰방대에 풍년초 담뱃가루를 넣어 피우셨거든요.


< 대구 달성공원 항공사진 >
위나 아래 2장의 달성공원 사진은 비교적 최근의 달성공원과 인근 모습을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달성공원 정문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난 복개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예전엔 시궁창 물이 흐르고 있던 개천이었습니다) 나오는 옛 '인동촌시장' 길이 잘 정비가 된 듯한 모습을 봐서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인동촌시장이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78년 당시에는 속칭 '텍사스'라고 불리는 빨간불을 켠 술집들이 복개도로 양편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말이 시장이지, 환락가 다름아니었습니다. 물론 골목 드문드문 가게나 점포들이 들어서 있긴 했지만 저급한 술집들의 난립으로 인해 시장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술집들은 바가지 술값으로 악명높기가 전국에서도 알아줄 만큼 대단했습니다.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은 요즘엔 사실 듣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술이 방으로 들어 올 때마다(주로 맥주) 그때마다 아가씨들은 손님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 안주를 들여오곤 하는데 안주라는것이 조그만 접시에 땅콩과 대구포 몇개 올려놓고는 한 접시에 만원, 만오천원씩을 받는 폭리를 취했습니다만, 이것은 어찌보면 양반에 가깝구요. 안주접시 밑바닥에 또하나의 접시를 슬쩍 붙여 들여와 나중에 술값을 치를때 술상에 쌓인 접시숫자대로 계산을 치르게 되는것이므로 엄청난 술값이 나오게되는 것입니다. 당시는 이런 공공연한 행위가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자행(?)되어지던 시대였는데, 놀라운 것은 그 곳을 찾는 손님들도 이 사실을 사전에 익히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제발로 찾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대구바닥에서 술 꽤나 푼다던 젊은남자들 쳐 놓고 이곳을 한번도 찾지 않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인동촌시장 '텍사스촌'은 대구뿐 아니라, 명실상부 전국적 명물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기 전 술꾼들은 이를 미리 대비하기위한 작전을 짜서 가는데, 예컨데 방문 앞에서 마담들이 방안으로 들여놓는 안주접시를 정확히 세는 사람, 술은 안 마시면서 안주빨 엄청받는 아가씨를 제지하는 사람, 술을 덜 마시고 술상 밑 빈 맥주잔이나 물수건에 슬쩍 뱉거나 버리는 아가씨를 꾸짖는 사람 등등, 그곳을 가기 전 나름대로 직책(?)이나 임무를 부여하거나 하는 작전을 세우기도 했던 것입니다.


< 1970년대의 달성공원 및 대구 서부지역 항공사진 >

< 대구 대신동 미싱골목 입구 (2006년 봄) >
이 길이다. 국민학교 다닐 때 나는 늘 이골목길을 지나 다녔다. 비좁았던 이 골목길은 내 기억에도 늘 좁고,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웠던 길이었다. 점포 밖 길가에 까지 기계나 공구들을 잔뜩 내놓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불편을 끼치긴 했지만 다들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불평 한마디 없이 다녔던 길이다. 먹고 사는 일에는 너도나도 이해 해주고 참아주던 당시 인심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길바닥은 그땐 늘 더러운 구정물이 흥건히 괴어 있었다. 비가 많이 오기라도 하면 여기저기 아스팔트가 패인 구덩이에 괴인 흙탕물이 튀어 신발이나 바지가랑이를 더럽히곤 했다. 그 때는 그 길에 온통 사람과 삼륜차, 짐 자전거, 리어카 등이 뒤엉켜 혼잡하기도 했거니와 철공소 같은 곳에서는 쇠를 깎아내는 소리, 모터 돌아가는 소리 등 골목길이 온통 소음으로 뒤덮이기도 했다. 사진에서 왼쪽 붉은색 건물(서울미싱)은 목욕탕이 있었다. 일년에 몇번 안하는 목욕을 이곳에서 하고 이발소가 이층에 있어서 이발에 면도까지 했다. 비산동집은 국민학교부터 고교시절까지 살았으므로 고교때 수염이 거뭇거뭇 났던 난 이 목욕탕 건물에 딸린 이발소에서 면도사 아가씨의 능숙한 면도솜씨에 늘 감탄하며 이곳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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