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 신동아 2001년 3월호 :: 2006/03/31 23:12
| [문화재 전문위원의 현장고발] | ||
대한민국! 문화재를 파괴하는 나라 | ||
도굴범들이 한번 휘젓고 지나간 다음에 고고학자들이 뒤늦게 ‘역사적 발견’이란 식으로 언론의 각광을 받으며 발굴에 들어가는 나라,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주체가 오히려 파괴에 적극적인 이상한 나라, 유적을 복원한다며 드릴로 화감암에 구멍을 뚫어버리는 희한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보존 현주소다. | ||
| 주강현 <문화재전문위원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 ||
캄보디아의 고대 앙코르왕국(657∼1432년)이 전성기를 누리던 12세기 초에 세워진 앙코르와트사원. 둘레 6㎞에 달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미국 CNN방송은 지난해 처참하게 잘려나가고 있는 앙코르와트사원의 실상을 방영하여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도굴꾼들은 기계톱을 동원하거나 원시적인 지렛대는 물론이고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사원 벽면과 석상을 잘라냈다. 불상은 머리통이 잘린 채 흉물스러운 잔흔을 남기고 있다. 약탈된 문화재들은 이웃 방콕으로 넘어가서 국제시장으로 팔려나간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뜻있는 한국인들도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에 의하여, 더 나아가 6·25전쟁 기간을 통하여 이와 같은 도굴과 파괴가 한반도 전역에서 비슷한 상황으로 벌어졌음을 고려할 때 남의 일이라고 비판만 할 수 있을까. 현재 중국언론에서는 양쯔강 중류에 건설되고 있는 산샤(三峽)댐 건설 속보를 속속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양쯔강에는 불후의 명작‘이소(離騷)’의 작가인 초나라 굴원(屈原)의 옛집과 삼국지의 무대 백제성(百帝城)이 있다. 상류의 펑제(奉節)에서 하류의 이창(宜昌)에 이르는 곳곳에는 명·청조의 누각을 비롯한 수천 점의 중요 문화재가 산재한다. 유구한 양쯔강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수량으로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매장문화재가 숨겨진 곳이다. 또한 강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해온 이들의 오랜 취락과 그네들의 삶의 양식이 간직한 문화총량은 도저히 계산 불가능할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보도는 천편일률적이다. 수몰될 8만명의 이주 완료, 세계 최대규모의 댐, 280억달러의 예산, 연간발전량 850억㎾/h 등이 거론될 뿐이다. 세기적 대역사로 중국정부의 21세기 야심작임에 틀림없으나 문화재파괴는 ‘보도통제’되고 있다. ‘현대화 신화’에 몰입한 중국정부의 개발드라이브 정책에서 ‘거추장스러운’ 문화재보존 따위는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샨샤댐보다는 작지만 우리에게도 크고작은 댐, 저수지, 간척지, 공장부지, 항구, 도로, 아파트단지 등이 건설되었거나 앞으로도 속속 들어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유산이 정처없이 쫓겨나거나 파손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중국의 샨샤댐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를 무조건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또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원목을 ‘고급 취미’로 선호하게 되었다. 이면지를 쓰자는 구호만 들릴 뿐 종이낭비 지수도 세계적이어서 나무 소비량이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남방으로 진출하여 원시림을 벌목, 일부는 들여오고 일부는 재가공하여 제3국에 수출한다. 벌목으로 인하여 숲은 줄어들고, 수천년간 숲에 의지하여 살아온 소수민족들의 문화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있다. 단순한 문화 차원이 아니라 삶의 근거지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 이런 일은 멀리 극동시베리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의 무형문화 파괴에 한국기업이 일조하고 있는 사례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이처럼 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문제는 일국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제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와 산업화, 현대화 등의 담론으로 무장한 개발론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화유산의 보존이란 담론과 대척점에서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의 2001년 현주소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 ||
| 의연한 전통, 멈추지 않는 도굴 행렬 | ||
오늘의 문화유산 보존을 가로막는 최대문제의 하나는 역시 절도와 도굴이다. | ||
| 부서지고, 깨지는 유적지들 | ||
문화유산 보존의 최대 논란거리는 역시 개발인가 보존인가 하는 해묵은 과제 아닐까. 지자체의 빠듯한 살림 속에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겠다는 경제논리가 문화논리를 앞서면서 문화유산 분야에도 속속 문제가 터지고 있다. 신자유시장의 밀어붙이기는 문화유산에서도 예외가 없다. 몇가지 사례만 살펴보아도 개발의 진통이 무척 심함을 알 수 있다. | ||
| 드릴로 구멍뚫는 복원 작업? | ||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은 그치지 않는다. 익산미륵사지를 갈 때마다 느끼는 의문점의 하나는 왜 그렇게 ‘두부썰듯’ 반듯하게 돌을 잘라서 복원했는가 하는 점이다.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더러라도 손작업을 하여 돌을 챙겼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 ||
| 문화유산보존과 삶의 조화 | ||
서산 해미읍성을 가면 텅빈 들판 같은 성안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반면에 순천 낙안읍성을 가보면 고즈녁한 풍경 속에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다가온다. 해미읍성은 조선후기 이래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이 된 채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오고 있는 반면에 낙안읍성은 일종의 ‘살아 있는 민속촌’으로 ‘활용’한다. | ||
| ‘예고된 참사’ 풍납토성 훼손 사건 | ||
문화유산보존과 삶의 조화가 문제가 된 최대의 사건은 역시 백제유적 풍납토성 발굴현장 훼손사건이 아닐까. 주민들이 굴착기로 발굴현장 1200여평 가운데 150평의 유적과 대형 수혈유구(구덩이)를 흙으로 덮고 건축자재를 쌓아 일부 파손하였다. 이들의 행위는 마침 유물정리작업을 위해 현장을 찾은 한신대 발굴단 학생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중단됐다. | ||
| 유형문화만이 문화유산인가 | ||
14년 전인 1987년 여름, 지금은 시화호로 변한 화성군의 음섬과 형도 등지를 수차례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의 답사노트는 당시의 생생한 민중생활사를 증언해준다. 지금은 사라진 음도 선착장, 시화호에 한가롭게 떠도는 돛배들… 그러한 ‘풍경과 상처’가 빛바랜 사진첩처럼 다가온다. | ||
| 고고학 중심의 문화재 편향 | ||
문화재보호법부터 따져보자. 제1장 총칙 제2조에 의하면, 문화재는 성격에 따라 1) 유형문화재 2) 무형문화재 3)기념물 4)민속자료로 구분된다. 문화재관련 법령을 보면, 유형문화와 기념물은 대체로 고고학 분야가 담당하고, 무형문화재와 민속자료는 민속학분야가 주로 취급하는 문화재로 보인다. 그만큼 민속학 분야가 다루어야 할 문화재 비중이 적지 않음을 일러준다. | ||
| 역사 불명의 지역문화 축제 | ||
2001년은 문화관광부가 정한 ‘지역문화의 해’다. 도대체 지역문화란 어떤 문화를 기반으로 설정해야 할까. | ||
| 신화는 훌륭한 문화관광 상품 | ||
둘째, 분명한 실패사례의 하나로 울산의 처용암을 꼽아본다. 문화와 환경의 절대관계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 ||
| 유형에서 무형으로 | ||
‘뉴욕타임스’는 연초에 사라지는 캐러번(낙타 대상)을 집중 보도하였다. 푸른색 옷과 터번을 즐겨 착용하여 ‘사하라의 푸른 영주’로 불려온 사하라사막의 대상들이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특집으로 보도한 것. 낙타를 끌고 사막 이남과 알제리,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오가면서 물건은 물론이고 문화를 전파시켰던 중요한 메신저들이 사라졌다. 이제 더이상 사막을 낙타로 이동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 | ||
| 50년 전 밀짚모자도 구할 수 없다 | ||
무형문화적 관점에서 새롭게 문화유산관을 정립해나가다 보면, 근대문화유산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눈에 뜨인다. | ||
| 사라져가는 근대문화유산 | ||
2001년 벽두에 덕수궁 뒤편 옛 배재학당터 고층빌딩 재개발이 논란을 빚고 있다. 국내 최초의 신교육 발상지로 고종황제가 직접 이름붙인 유서깊은 옛 배재학교 자리 3100여평에 배재학당측이 고층 주상복합건물과 업무용 빌딩 등 고밀도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승만대통령, 한글학자 주시경선생 등을 배출한 유서깊은 건물이 재단측의 경제적 이유 때문에 위기에 서 있는 것이다. | ||
| 비판받는 문화부와 문화재청 | ||
문화유산보존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문화부의 확고한 신념과 정책집행일 것이다. 문화유산보존과 관련하여 문화부에 많은 비판이 퍼부어지고 있다. | ||
| 학계부터 자성해야 | ||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성해야 할 집단은 학계다. 가령 풍납토성 문제로 학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떠들썩하였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백제유적지를 파괴해버린 시민들의 행동은 만인의 지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고 온갖 매체에 비판적 글을 올린 학계는 스스로 투명한가부터 반성해야 한다. | ||
| 문화유산 지키는 시민들 | ||
전문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시민문화관에 입각한 문화유산보존운동은 앞으로 많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몇가지 사소한 사례부터 집단적 노력까지 민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본다. | ||
|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필요 | ||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유산의 보존에서도 이제 정부가 모든 것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풍납토성의 예에서 보듯 국민의 사유재산 침해가 문제가 되면서 국민과 함께 문화유산을 지켜나가는 운동이 절실해진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시민과 민간영역이 커지면서 문화재청과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관 위주의 문화유산 보호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
| 빠름의 문화관에서 느림의 문화관으로 | ||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문명관은 지난 20세기 동안 서구식으로 교육받고 길들여져온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 없이 문화유산의 올바른 전승을 기대할 수는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