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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당은 일제때 조양회관과 함께 ‘대구 문화 1번지’로 일제때 대구의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가 충돌한 공간이기도 하다. 29년 대구부와 유지들이 내놓은 15만5천원으로 갖고 착공한지 2년만에 위용을 드러낸 공회당은 830 여평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 5층(19m)의 적벽돌조로 당시 전국적 명물로 자리잡았다. 4∼5층은 한때 호텔로 쓰였고, 광복 직후에는 건국치안유지회 경북지부, 미군환영대회장, 6·25때는 부상병수용소, 군인호텔, 육군중앙극장, 61년말 잠시 경북문화회관이 거쳐갔지만 폭증하는 지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모두 감당하지 못해 철거되고 75년 10월 5일 현재의 대구시민회관으로 태어나게 된다. 고성동 사옥 시절에도 전속가수를 두었지만 공개홀이 없어 주말에 대구 공회당 강당을 빌려 각종 공연 행사를 선보였다. 당시 KG배지를 달기 위해 선 매년 실시되는 가수시험에 합격을 해야만 했다. 58년부터 대구방송국은 매년 기수별 공채 가수를 뽑았고 그 시험에 합격하면 정식으로 가수로 활 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대접을 받아 흡사 사법시험처럼 숱한 재원들이 응시를 했다. 대구 가수 1호 고화성을 비롯, 현재 KBS안동 방송총국 아나운서 실장인 김충진의 아버지 김상규, 60년대 중엽 ‘사랑의 백서’(김학송 작곡)를 불러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나운, 원남이란 예 명으로 활약했던 전 대구상공회의소 모 회장, 전 동아일보 대구주재 기자 이혜만,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재원 이은우, 냇 킹콜 노래를 잘 불렀고 매력적 저음을 가진 안대원, 여자가수로는 김차란, 이영숙, 윤금란, 이혜주, 서영순, 이명희, 이혜정 등이 거쳐갔다. 6년전 대구시 남구 대명5동 명덕 시장에서 달구지 막창집을 꾸려가고 있는 김해광(62)은 한국연예협회 대구시 부지방과 가수분과 고문을 역임했고 지금도 지역내 크고작은 노래자랑 심사 위원과 위문공연 무대에 서기도 한다. 당시 KG홀 가수들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수를 통하지 않고 음악을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방송이 처음 시작된 것 은 27년 경성방송국이었고, 61년 12월31일 KS TV를 통해 처음 방송을 시 청할 수 있었다. PTV는 말할 것도 없고, 전축과 라디오도 한 마을에 한대 정도밖에 없던 50∼60년대엔 직접 공개홀, 극장의 악극단 가수를 만나지 않고선 유행가 한 자락 들을 수 없었다. 녹향, 하이마트, 시보네 등 음악 감상실이 있었지만 거의 클래식만 틀어주어 일반인들이 가기 부담스러운 곳 이었다. 50년대, 지역에는 팝송 앨범을 구할 수 없었다. 마니아들은 83년 대구MC FM이 개국이 하기 전까지 AFKN방송, 나이트클럽, 카바레, 비어홀, 살롱, 바의 캄보밴드 연주에 만족해야만 했다.P KS전속 가수들은 월급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1주일에 몇차례 고정프로에 출연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밤무대를 통해 푼돈을 벌었다.P 당시 KG홀 2층은 공개홀(588석)이었다. 도민들한테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께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노래의 향연’이 었다. 당시 전속 악단장은 예천 출신의 김상열이었다. 악단은 7인조였고 전 기기타가 없어 드럼, 콘트라베이스, 아코디언, 색소폰, 트럼펫이 하모니를 이뤘다. 가수들은 양복에 넥타이, 여가수들은 민요파트는 한복, 가요파트에서 는 원피스를 정숙하게 입어야만 했다. 가수들에게 여러가지 행동의 제약이 많았다. 첫째 객석을 너무 자극해서는 안되고 율동도 점잖아야만 했다. 담 당 PD들은 가급적 한쪽 팔만 조금 흔들어라고 주문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 고조치를 당했다. 물론 백 댄서도 없었다. 자연 객석은 핫(Hot), 무대는 쿨(Cool)했다. 프로그램당 전속가수 6∼7명이 나와 1∼2곡을 부르고 들어가고 2부에선 도민노래자랑대회가 열렸다. P 가끔씩 중앙에서 쇼단이 내려오면 전속가수들도 그곳에 가서 푼돈을 벌 수 있었다. KG홀 전속 가수들이 한번 출연하면 30원정도 받았고 만원사례 일 경우 극단주로부터 50원을 받았다. 이들은 팔공산 공군부대, 삼덕동 대구교도소, 포항송도해수욕장 등지로 순회공연를 자주 나갔다. 선거철이 되 면 이승만 정권의 지시에 의해 여당 유세반으로 전락되기도 했다. 다음회에 는 현재 대구에 살고 있는 KG홀 전속가수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본 다.P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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