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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의 기질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중구 계산동 요정 일심관 해프닝 사건. 하루는 김경호가 일심관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 유별나게 괄괄하고 큰 김경호의 목소리가 건너방에 앉아 있던 대구MC 모 사장 귀 속으로 들어갔다. 모 사장은 유명인사인 부하직원 김경호를 자기 술자리로 불러 동석한 구자춘 도지사, P 경북도경찰국장, M 공화당 연락실장, O 대 구상공회의소 회장 등 지역 기관장에게 소개를 했다. 모 사장은 김경호를 앞세워 자기 체면을 한껏 높여볼 심산이었는데 계산착오였다.p 김경호는 천연덕스럽게 마이크를 잡고 “이 술자리의 술과 음식은 백성 의 피와 살이요,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 또한 높아간다”는 요지 의 암행어사 이몽룡이 변사또 앞에서 읊었던 시조 한수를 갖고 즉석 ‘패 러디 달구벌 만평’을 진행해 참석자를 경악케했다.p ‘달구벌 만평’때문에 된서리를 맞은 고위 공직자들도 적잖았다. 경주지역의 모 총무과장이 시간만 나면 기원에서 산다는 첩보가 입수됐 다. 특히 연말연시 업무 결산에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기원행을 한다는 얘기에 김경호는 어금니를 악 물었다.p “연말연시 공무원 여러분, 업무결산에 얼마나 노고가 많습니까요. 그런 데 OOO 경주시 총무과장님, 기원에서 번거롭게 결재를 받느니 이 참에 경 주시청을 기원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요?” 양택식 경북도지사 시절 영양군의 모 공보실장이 노름을 즐겼다. 그 소 식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p “양택식 도지사는 ‘약진 경북’ ‘들에서 만나자’고 외치는데 영양군 공보실장을 만나려면 노름판으로 가야되겠네요.” 구자춘 도지사의 친구였던 고령군 모 양정계장도 표적이 됐다. 그 계장 은 자기 친구인 구 도지사 이름을 팔며 거들먹거리다가 ‘달구벌 만평’에 덜미가 잡혔다.p “고령군 양정계장, 친구가 높이되어 얼마나 좋겠습니까요? 낙동강 잉어 가 뛰니깐, 사랑방 목침도 팔딱팔딱 뛰는구만요.” 보도 수위가 위험수위에 도달하자 몇몇 기관장들은 ‘달구벌 만평 죽이 기 물밑작전’을 시도해보았지만 허사였다.p 1969년말쯤 박정희 대통령이 순시차 대구에 들렀다가 수성관광호텔 202호 에 투숙하고 있을 때 우연히 ‘달구벌 만평’을 듣게 된다. 지방에서 문제 기관장들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것을 보자 속으론 허뭇하게 생각한 박 대 통령은 상경하면서 비서진들한테 달구벌 만평을 호평했고, 이 때문인지는 몰 라도 10월유신 전후 비판적이며 반체제적 프로그램을 숙청시킬 때 ‘달구벌 만평’만은 철퇴를 맞지 않았다.p ‘달구벌 만평’이 ‘지역 공직자 킬러’로 등장하자 경북도지사, 대구시 장 등 지역의 주요 기관장들은 달구벌 만평 시간만 되면 혹시 자기 이름 이 거론되지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귀를 쫑긋 세우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특히 구자춘 도지사는 달구벌 만평 시간과 아침 화장실가는 시간이 겹 치자, 아예 화장실에서 들을 수 있는 휴대용 트렌지스터를 급히 구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청와대까지 전담 모니터 요원을 두고 ‘달구벌 만평’을 스 크린했다고 한다. 산이 높으면 그늘도 짙다고 했다. ‘가짜 김경호 사건’이 김경호를 괴 롭힌다. 참고로 김경호는 사석에서는 절대로 자기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 이름도 ‘정칠삼’으로 소개했다.p 구미 금오산 나이트클럽에서 한 취객이 술을 70만원어치 마시고 김경호 란 이름으로 외상사인을 했다. 총지배인은 좀 이상했지만 “김경호가 먹은 술인데…”라며 그냥 넘어갔다. 며칠 후 다시 외상을 하려고 하자 구미경찰 서에 신고한 결과 문경의 한 농기구 판매상 아들 소행임이 드러났다. 그뿐 만 아니라, 한 성폭행범이 김경호 이름을 팔고 MC드라마에 출연시켜 준다 면서 10∼20대 여성들만 집중적으로 연쇄 성폭행을 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 생해 김경호는 3년간 악몽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p 83년 김경호는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대구MC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하고(현재 달서구 성당동에서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다) 뒤를 이어 20여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은 후발주자로 홍문종(56)이 등 장한다. 그는 김경호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했다 . 홍문종은 99년 ‘달구벌 만평’으로 한국방송대상 성우상을 받았지만, 실 은 그는 성우 출신이 아니고 연극배우 출신이다.p 홍문종은 82년 6월부터 한국연극협회 대구지부장 재직중에 59년 경북학생 연극회 연극인으로 출발해 원술랑 등 20여편의 연극에 출연한 김경호와 이 런저런 인연이 있었다. 70년대에는 대구 MC TV ‘범어동 할아버지’ 코너 에서도 함께 일했다. 김경호가 라이온스 309 D지구 보도위원장으로 일본 출 장 때 홍문종이 대타로 진행을 맡은 인연으로 고정 진행자로 발탁된다. 김 경호가 사라지자 그 맛을 이을 대타 진행자 물색이 어려웠다. 홍문종 전에 안민재, 현재 MC FM 골든디스크 진행자 DJ 이대희씨, 김준연씨 등이 진 행을 맡았지만 모두 적격자가 아니었다.p 홍문종은 절호의 찬스를 그냥 놓칠 수가 없어 김경호의 어투와 자신의 어투를 비교했다. 김경호가 늘 맨트 끝을 ‘∼까요’로 몰고간다는 걸 알 고 자신은 ‘∼데요’ 그리고 후렴부 직전 당사자를 비웃는 듯한 냉소적 의미로 헤헤, 허허투를 섞으면서 극적 요소를 가미했다. 홍문종이 지금 스 타일을 잡는데 약 6개월이 걸렸다. 처음 몇달간은 홍문종으로 진행자가 바 뀐 줄도 모르는 청취자도 있었다. 그는 다시 고심했다. 그래서 해당 기관 장과 가능한한 목소리를 동일하도록 가는 게 김경호 그늘에서 빨리 벗어난 다는 걸 알고 주요 기관장 목소리를 녹음, 밤새도록 연습해 점점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p하지만 기자들이 물어 온 원고 확인작업을 하지 않아 남자 를 여자인 줄 착각해 여성성대묘사를 해 망신을 당한 기억도 있다. 녹음방 송이다 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전날 오후 7∼8시 신사옥 4층 라디오부 조 종실에서 녹음을 해야 한다. 시사만평은 시의성이 생명. 당연히 밤에 녹음 을 해두었더라도 심야에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녹음하러 와야 한다. 전번 삼덕동 권총강도가 심야에 검거돼 재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 와도 휴대폰을 꺼놓지 못한다. 70년 이필동 연출의 ‘수전노’를 KG홀에서 공연 한 것을 비롯해 그동안 250여편의 연극에 출연한 지역 연극계 고참격. 당 연히 그는 연극인인데, 달구벌은 홍문종이란 인식이 강하게 심어져 그 이미 지를 벗어던지는 게 그의 남은 생의 화두인지도 모른다. 김경호-홍문종, 두 사람이 일궈온 달구벌 만평 37년. 3일 한국방송부문 지역라디오 제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p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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