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24] 이른봄의 달성공원 답사 (2/2) :: 2006/03/30 13:46



상화시비 후면. 비문의 상세는 아래와 같습니다.
상화 시비의 글은 문인 김소운(金素雲)씨의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사진부터는 향토박물관 내부의 전시물들입니다. 조선시대에 성인 남자가 패용했던 호패들입니다.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사용하던 벼루와 칼입니다.

20세초 당시의 대구읍성 및 대구읍 전경을 재현한 모형입니다. 당시의 대구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대구성곽의 모습, 지금은 없어진 대구천, 계산성당, 경사감영, 성 안의 골목 등을 잘 볼 수 있습니다.


향토박물관 정문앞.
정면에 보이는 벽돌이 섞인 건물은 옛 원화여고입니다. 현재는 "달성빌딩" 이라고 부릅니다.
상화 시비의 글은 문인 김소운(金素雲)씨의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詩人(시인) 李相和(이상화)는 西紀(서기) 1901年 辛丑(신축) 4月 5日 又甫(우보) 李時雨公(이시우공)의 第2子로 태어나 西紀(서기) 1943年 癸末(계말) 3月 2日 43歲(세)로 세상을 떠나니 大邱는 그 出生地(출생지)요, 終焉地(종언지)이다. 그의 詩歷(시력)은 「白潮(백조)」 同人(동인) 시대에 시작되었으니 香氣(향기)롭고 분방한 그 詩風(시풍)은 초기의 조선시단에 있어서 淸新(청신)한 一魅力(일매력)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나의 침실」을 비롯하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逆天(역천) 」,「離別(이별) 」등이 있으니 碑面(비면)에 새긴 詩句(시구)는 「나의 침실 」中(중)의 一節(일절)이다. 흘러간 물의 자취를 굳이 찾을 것 아니로되 詩人의 조찰한 생애를 追念(추념)하는 뜻과 아울러 뒤에 남은 者(자)의 허술하고 아쉬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자는 생각으로 작은 돌을 새겨 여기 세우기로 한다. 戊子(무자) 正月(정월) 金素(금소) 雲識題簽葦昌(운식제첨위창) 吳世昌(오세창) 84歲書(세서) 詩句遺撚三子(시구유년삼자) 太熙(태희) 11歲書(세서) 背銘竹濃(배명죽농) 徐東均(서동균)"
해방 뒤인 1948년 백기만(白基萬), 김소운(金素雲)씨 등의 힘으로 세워졌다.









달성공원 정문 네거리 부근에 있는 오래되고 허물어져 가는 건물. 아마도 일제시대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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