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고유공간5 - 삼덕동 담장허물기마을 :: 2006/04/01 18:43
살고싶은 동네, 머물고 싶은 마을
근대문화재의 보고, 삼덕동
대구삼덕동은 중구의 다른 동보다 면적이 크다. 시내 동성로 금곡삼계탕, 로데오거리, 삼덕소방서, 경북대병원, 경북대치대, 신천둔치 일부까지 모두 삼덕동에 속한다. 이 곳은 조선시대에 밀양 박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당시 이 마을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고 달성을 중심으로 밖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사람들은 외곶(外串)이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부터 일제식 동명인 삼덕동(三德)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일합방전 대구역 건설붐으로 대구에 정착하기 시작한 일본인 거류민단은 북성로와 동성로 동편, 동인동, 삼덕동, 대봉동 등지에 저습지를 매립해서 주거단지를 형성하게 된다. 한일합방 후 대구이사청, 달성군청, 지방법원, 대구형무소, 일본인학교, 관사, 주거단지, 군부대, 수도시설, 병원 등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다. 현대의 도심지개발 제한정책과 도심지 외곽이라는 이유로 상권개발이 크게 이뤄지지 않아 일제시대의 도로, 건축물 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근대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생활상권 주거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담장허물기는 시작되고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공간인 삼덕동에 미래형 도시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교과서에도 실린 담장허물기운동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했다. 타도시의 행정기관과 NGO단체에서 전국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꼽았던 담장허물기운동은 대구YMCA김경민 관장은 자신이 살던 전셋집 담장을 98년 11월 허물면서 시작했다. 그는 97년부터 진행해오던 꾸러기환경그림대회를 확대하면서 아름다운 골목벽화작업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일제시대 적산가옥인 삼덕초등학교관사를 리모델링해 빛?미술관으로 개장했고 2001년에는 전통한옥을 복원해 마을국악원으로쓰이는 ‘마고재’을 열었다. 가정집의 담장을 허물면서 마을만들기운동을 시작한 그가 담장을 허문 이유는 그 외로 간단했다.
“담을 허물면 정원도 넓게 보이고 햇볕도 많이 비춰 참 좋을 텐데... 더구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지내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공간을 우리 부부만 즐긴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
한 개인의 운동이 전국적인 조명을 받게 된 계기는 99년 대구시민사회단체와 대구시가 공동으로 전개하는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의 중점과제로 채택되면서다.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는 민관학 파트너쉽에 의한 범시민운동으로 커지면서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전, 울산, 하남시, 부천시, 창원시 등 대부분의 행정기관과 서울경실련, 구미경실련, 부천 및 여수시 아젠다21 위원 등에서 벤치마킹을 했으며 2002년도 고등학교교과서(법문사 발행) 「인간사회와 환경」란에 소개도 되었다. 각 대학교 학생 및 교수들도 논문작성을 위해 끊임없이 대구삼덕동을 찾아오면서 현장답사와 견학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를 소개하는 관광가이드책자나 자료집에선 아직 소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랜드마크 - 14.4km의 사라진 담장
2003년 현재 대구에서 담장허물기가 이뤄진 곳은 관공서100개소, 주택·아파트 81개소, 상업시설45개소, 보육·복지·종교시설 40개소, 공공·의료시설 13개소, 학교11개소, 기타2개소이며 총292개소, 14.4km의 담장을 허물고 7만4천여평의 가로공원을 조성하였다. 삼덕동에 소재하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경북대병원, 경북대의대의 담장이 허물어지면서 도심지 최대의 담장없는 보행환경이 조성되었다. 포정동의 경상감영공원과 공평동의 2.28기념중앙공원도 담장없는 공원환경으로 만들어졌다. 올해의 담장허물기도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안성당, 영락교회, 신암교회, 경진초등학교, GM대우남대구정비사업소 등 종교·상업시설 5곳과 가정주택 6곳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대구사랑시민회의는 2004년 하반기 이후부터는 도심 주차문제 해소에 중점을 두고 ‘거주자 우선 주차제’ 시범지역의 담장허물기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동네
공평동, 동성로, 포정동의 관청을 다니는 일본공무원들은 삼덕동 일대에 대규모 관사단지를 조성하게 된다. 2001년부터 필자는 답사를 통해 100여 채의 관사건물과 일본식 주택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수가 대부분 100평 이상으로 지은 집들이라 풍채가 좋고 복원을 해도 오래 쓸 수 있는 가치로운 집들이 많다. 일제잔재청산의 잣대로 적산가옥을 들여다보면 하루빨리 없애야 되는 것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긍정적인 가치로 접근해야 한다.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서 공적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담장허물기동네의 ‘빛?미술관’이 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마을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유공간으로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 삼덕동에 보는 원룸바람으로 안타깝게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는 적산가옥을 볼 때 대구는 참 시간이 빨리가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도시와 문화재를 아끼는 품성을 배우지 않을까?
삼덕동엔 적산가옥 외에도 재미난 곳이 또 있다. 삼덕소방소 건너편 골목은 술보다는 술집사장들이 인기가 좋은 곳인데 삼덕동2가 까페골목으로 불린다. 까페근처에 관음사라는 조계종단 절이 하나있는데 걷다보면 뭉뚱하게 크게 지어진 절의 좌측 측면부가 보인다. 마당에 심어진 히말리아시다만 봐도 근 100년 가까이 되는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1916년에 지어진 이 절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상무이사가 절로 희사를 했다고 하며 주변에 관사가 밀집한 것으로 보아 일본사람들을 위한 도심지 절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관음사 주변에는 최마사, WES, 펑크홀릭, THAT, ACDC, 미술사, 애드가 등과 같은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사장들이 술집으로 개업을 한 곳이라 술마시는 분위기가 흥미롭다. 삼덕소방소 쪽으로 건너가면 실험적인 상품을 파는 가게들과 고급스타일의 유행을 선도하는 로데오거리를 만날 수 있다. 여하튼 대구 삼덕동은 일제시대 도로구조와 건축물의 원형을 많이 담지한 과거의 공간이면서 미래적인 도시구조인 담장허물기를 선보인 동네이며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같은 도심지 문화광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구의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