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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수성못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21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수성못
수성못이 올해로 축조 80년을 맞았다. 즐비한 카페촌과 식당, 운동복 차림의 시민들과 새하얀 오리배, 유람선이 쉴 새 없이 손님을 실어나르는 곳….이런 수성못도 수 십년 전에는 인적 드문 저수지였다. 사진(수성구청 제공)은 해방 전인 1933년 어느 봄날 수성못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담고 있다.

제법 넓은 둑길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과 주민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고, 저수지에는 나룻배 2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둑길 왼편 물에 잠긴 논은 현재 카페와 음식점촌으로 변했다. "못을 가로지른 뚝길과 만나는 산 아래 논밭 일대가 현재 수성관광호텔이 들어선 자리예요. 당시만해도 주변에 인가가 없었어요. 어릴 적 놀러오곤 했었는데 벚꽃나무 아래로 우마차가 다니곤 했어요." 1966년부터 15년 간 수성못 수문관리원으로 일했다는 최삼덕(69·수성구 상동)씨. 고향이 수성구 파동이라는 그는 수성못에서 인근 논에 물을 댔다고 말했다.

수성못이 관광명소로 인기를 구가한 것은 1960~80년대. 페인트로 '관광'이라고 적은 나룻배와 우산을 세운 2인용 보트, 거북선 모양의 중형 유람선이 등장했다. "수성못 '뽀드' 한 번 타고 나면 어깨 힘깨나 줬었지요. 나무그늘에서 꽹과리를 치며 노는 사람도 많았어요." 박 대통령이 즐겨 묵었다는 인근 호텔에는 신혼여행객들이 찾으면서 덩달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고.

수성못은 1925년 한 일본인이 황폐한 수성들을 옥토화하기 위해 당시 총독부 지원을 받아 1년 만에 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3년 동대구로와 연결되는 유원지 진입로 확장공사를 거쳐 도시근린 유원지로 개발되면서 현재와 유사한 모습을 갖췄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인 1933년의 수성못 일대의 호젓한 풍경(위쪽)과 두산오거리에서 수성관광호텔로 가는 도로에 인접해 산책하는 시민들로 붐비는 수성못.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 2005년 0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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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비산성당 철길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20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비산성당 철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 ♪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 폭 칙칙 폭폭~♩"

1955년 한국전쟁 중 시인 '구상' 선생이 1년여간 피난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서구 비산1동 비산천주교회.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녘, 경부선 철길 위로 기차 한 대가 '삐이 삑' 지나가면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에 아버지는 잠을 깼다. 옆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도 잠을 설쳤다. 애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기차길 옆에는 애들이 많다'는 속설은 이 곳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참 많이 변했지. 철길 사이로 날뫼 큰 못, 작은 못이 있었는데 여름이면 수영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거든. 당산에 올라 물렁공으로 손야구하고 나무 타고 놀았지. 언덕에 올라가야 라디오도 잘 들렸어. 기차가 들어오면 맨발로 쫓아다니고 넘어져 다치고 혼나고…"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토박이 장원식(75) 할아버지는 "그때가 참 좋았지"라며 옛추억에 잠기는 듯 눈을 감았다. 엄청나게 변했다. 교회 뒤편 벌거숭이 날뫼당산에는 학교·주택·빌라가 빽빽이 들어섰다. 날뫼못은 메워져 지하차도로 변했다. 구식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로 다니던 경부선 철도에는 이제 KTX 고속열차가 시속 250km 속도로 재빠르게 달리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비산천주교회 앞으로 러일전쟁 때 만들어진 철길, 이 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쉼터였다. 당시에는 조랑말도 다녔다. 위쪽 지천역 인근에 살던 사람들은 밀가루를 빻기 위해 철길을 인도 삼아 교회 앞까지 걸어서 다녔다.

"가뭄이 오면 깊은 샘을 가진 성당에서 물을 길어다 썼어. 종교없는 사람들도 미숫가루, 수박, 햇감자를 신부님에게 몰래 가져다 주고 새벽녘에 물을 빼다 썼어. 살림살이는 어려웠어도 정(情)이 넘쳤지. 그립다네 그 때가."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설명 : 1960년대 비산성당 주변(위.서구청 사진 제공)과 현재의 풍경. 당시 증기기관차가 지나갔던 철길과 KTX 고속열차가 달리는 풍경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 2005년 0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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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대구교대 맞은편 영선시장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9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대구교대 맞은편 영선시장
남구 대명동 대구교육대학 맞은편 영선시장 앞에 가면 '상전벽해(桑山田碧海)'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이곳은 30년 전만 해도 2만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연못이었다. 도시화에 따라 못이 메워지고 그 자리에 시장, 주택이 들어섰지만 1924년 촬영된 빗 바랜 사진에는 연못 가운데 누각(관덕정)에서 몇 사람이 풍류를 즐기고 있고 주변에는 과수원이 들어서 있는 전원적인 모습이었다.

영선못은 시내에서 가깝고 수량이 많은 데다 주변 경치가 좋아 보트놀이를 했고 누각에서는 활 쏘기 등 놀이시설로 이용됐다. 겨울에는 얼음지치기, 여름에는 낚시·수영 등 시민 휴식처로 사랑을 받은 곳이었다. 영선못은 원래부터 연못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다.

조선 말엽 한 도사가 이곳을 지나다 지세(地勢)를 살피더니 땅주인인 고관대작을 찾아갔다. 이 도사는 현재의 영선시장 쪽을 가리키며 "저곳에 집을 세우면 나라에 근심이 생긴다. 그러나 큰 못을 만들면 나라에 큰 경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 고관은 자기 재산을 들여 12년 동안 땅을 파고 흙을 모아 제방을 만들었다.

대덕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어 여름 장마철에는 홍수를 예방하고 가뭄이 들면 주변 논에 물을 대는 수원지 역할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선못의 최초 소유주는 석차규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뒤 마산 세무서장을 지낸 김모씨가 구입, 자식에게 물려 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주변에 주택이 들어서고 농사를 짓지 않게 되면서 1970년쯤 둑이 헐리고 되메워졌다. 땅주인이 우(牛)시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아 대구시에 기부채납하고 시에서 영선시장을 조성, 오늘에 이르렀다.

한때 번영했던 영선시장도 인근 주택들이 노후화되면서 크게 위축됐다. 이재봉 남구청 상공계장은 "올 3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면 영선시장의 현대화 계획이 가능해져 발전이 기대된다"고 했다.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사진: 1924년 관덕정에서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사진 위쪽)· 2005년 현대화 계획을 앞둔 현재 모습.

- 2005년 0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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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약전골목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9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약전골목
조선시대 효종 9년(1658년)에 개장된 이후 1908년 현재의 남성로 일대로 옮겨와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약전골목. 3대째 약전골목에서 약업사를 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약령시는 일제 강점하 민족정기 구현과 국권회복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한약재를 공급하는 한약물류의 거점역할을 해왔다"고 회상했다.

대구 약령시는 한때 일본 조선총독부가 약령시 개장 불허로 시장이 폐쇄되기도 했지만, 2001년 한국기네스위원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의 약전시장으로 인증받으면서 명성을 재확인했다. 1940년대 사진에서 보듯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현대적인 거리로 탈바꿈 중이다.

공사비 1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5월 한방테마거리를 조성했고 연말에는 지역 특화사업의 하나인 '한방특구'로 지정됐다 서쪽에는 약령시를 상징하는 대형 상징문이 서 있으며 동쪽에도 상징문이 세워질 예정이다.

약령시보존위원회 관계자는 "연간 20여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약령시를 찾고 있으며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대구 약령시는 350년 전통을 바탕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 약전골목에는 남성로 일대 800m 도로변을 따라 한약도매업소 82곳, 한약방 42곳, 한의원 24곳, 인삼사 20곳, 기타 제탕원, 제환소 122곳 등 한약재와 관련된 업소 290개가 있으며 매년 5월초 한방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사진설명 : 1940년대 전후 최전성기를 누리던 남성로 약전시장(위. 매일신문 자료사진)이 현대화된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옛날 사진 왼쪽이 현재 제일교회의 붉은색 담장이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 2005년 02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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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동촌유원지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7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동촌유원지
뱃놀이 즐기던 시민들의 쉼터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처녀들, 아이 손을 잡고 봄 나들이에 나선 가족, 행락객을 가득 태운 유람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나룻배, 쌍쌍이 보트에 앉아 노를 젓고 있는 뱃놀이객…사진(동구청 제공)은 1960년대 말 어느 봄, 설렘이 그득한 동촌유원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동촌에서 태어나 50여 년을 살았다는 이태호(50)씨는 사진을 보며 "당시 동촌유원지의 가장 흔한 풍경"이라며 "강둑 너머 보이는 굴뚝은 고량주 공장이었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던 금호강둑은 늘 불장난으로 시커멓게 타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이 붐빌 때면 어김없이 꽹과리 소리가 하루종일 울려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오히려 이를 통해 삶의 고단함을 달랬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아버지가 동촌유원지 일대를 누비던 유람선의 선주여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온통 금호강과 함께 있다"며 "아양교에서 현재 인터불고 호텔까지 오가던 유람선에 올라 금호강의 낭만에 흠뻑 젖어들었던 행락객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도라지, 갈매기, 희망, 용운호, 제비호, 청용호…. 당시 동촌유원지를 호령하던 유람선들의 이름까지 정겹다. 맑은 물, 탁 트인 경치, 유원지 일대를 수놓았던 늘어진 버드나무, 그리고 동촌유원지의 대명사였던 '구름다리' 덕분에 동촌유원지는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았다. '저 하늘의 슬픔'(이윤복·신영균 주연), '마지막 왼손잡이'(김희라 주연) 등이 이곳에서 촬영된 대표적인 작품.

때문에 영화촬영이 있는 날엔 영화 관계자들이 지프를 타고 홍보에 나섰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촬영장에 모여들어 하루를 꼬박 이곳에서 보내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동촌유원지는 당시 대구시민들의 넉넉하고 푸근한 쉼터였으나 10여 년 전부터 쇠락을 거듭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사진: 1968년 봄, 유람선과 나룻배, 행락객으로 북적이던 동촌유원지(위)와 오리배와 신식 여관 건물들이 들어서있는 현재의 모습.

- 2005년 0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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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달서천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7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달서천
"도대체 여긴 지, 저긴 지 종잡을 수가 없구먼. 변해도 너무 변했어."

지금부터 45년 전이다. 1960년에는 갓 쓰고 곰방대 담배 피던 고무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중절모, 한복 바지에 구두를 촌스럽게(?) 신은 아저씨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조무래기 아이들이 냇가에 돌을 던지며 놀았다. 손으로 직접 쓴 듯한 삐딱간판이 걸려있었다. 오래 헤매다닌 끝에 옛 사진 속의 현장을 찾아냈다. 양 옆으로 솟은 두 개의 전봇대를 빼고는 그 자리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변해 있었다. 그나마 옛날 사진의 한가운데 조그맣게 남아있는 '옥산메리야스공업사'라는 간판이 현 위치를 찾아낸 유일한 단서였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양말이 다 보이는 짧은 바지를 입은 그 때의 아이는 지금 서구 북비산네거리에서 달성네거리 쪽으로 향하는 왕복 6차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셈이다. 대여섯 명의 할아버지는 몇십 미터 앞으로 지나가는 경부선 기차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지대 위에서 쓰러질 듯 버티고 서 있는 세탁소, 약방, 미용소 등은 보석방, 식당, 전자부품회사로 싹 바뀌었다.

"달서천이 복개되기 전 주민들은 만날 이곳으로 모여들었지. 엄마는 미나리를 씻었고 그 딸은 빨래를 했어. 사내애들은 물장구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 여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쉼터이자 삶터였던 거야." 당시 경북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장원식(76·현 서구문화원 이사·사진 제공)씨는 40여 년 전 추억에 잠겼다.

"그 당시 자전거로 통학하며 애들을 가르쳤는데 달서천 복개구간에는 삶의 군상들이 있었지. 넝마 동이도, 폐품장수도 이웃 간 정(情)이 있어 모두가 살 만했었지."

그 표정들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다는 장 할아버지. 차들이 씽씽 달리는 왕복 6차로의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말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지?"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1960년대 달서천 앞 풍경(위)은 요즘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두개의 전봇대가 서있는 자리만 같을 뿐,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 2005년 03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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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달성공단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6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달성공단
전형적 과수원 마을서 지역경제 버팀목 변신
달성군 논공읍 본리1·2리 논공·소두벌 마을(사진). 3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50~60농가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1970년대 중반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한다. 76년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왕복 2차로 구마고속도가 착공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구마고속도의 통과를 계기로 79년 지방공단으로 지정되고 5년만인 83년 본리 1리 '논공'마을과 본리 2리 '소두벌'마을을 합친 자리 120여 만평에 지금의 달성공단이 들어선 것.

공단 이름도 처음에는 자연부락명을 본 따 '논공 공단'으로 불리었으나 1991년 '달성지방공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최창림(64·논공읍 노이리) 논공읍 번영회장은  "공단이 들어서기전 논공부락은 산골짜기에 위치해 주로 사과·포도 등 과수원 위주의 밭농사를 짓는 조용한 농촌이었다"며 "5년만에 농촌 마을이 대규모 공업단지로 변했으니까 천지가 개벽한 셈"이라고 말했다.

달성군 윤창기 허가민원과장(당시 보상 담당)은 " 당시 공단 편입부지의 보상가가 평당 2천500~3천 원으로 모두 50억 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위치에 따라 평당 200~300만 원으로 1천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라며 "용지보상금을 모두 합쳐도 큰 공장 하나도 살 수 없을 것"이라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는 듯했다.

당시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달성공단 입구에 논공읍 남동 '사부랭이'마을에 마련된 1백여 가구의 이주단지로 생활터전을 옮겨 살고 있다.

달성공단 관리사무소 이진목 사무국장은 "처음에 70~80개이던 입주업체가 공단 조성 23년째를 맞아 지금은 320여 업체로 4배이상 늘었고, 연간 생산실적 3조 원, 지난해 수출실적이 10억달러 등 지역 경제의 버팀목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달성공단은 최근 구지 달성2차산업단지의 성공적 분양에다 현풍 대구테크노폴리스 및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이 들어서게 되면 논공-현풍-구지로 이어진 산업벨트화와 국토 동남권 R&D(연구·개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사진: 1970년대 논공면의 자연부락 '소두벌'(사진 앞쪽)과 현재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달성1차산업단지.

- 2005년 0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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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옛 동아극장 터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5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옛 동아극장 터
"다들 사는 건 어려웠어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던 시절이었지."

중구 달성네거리 부근 달성지구대 옆에 있는 구 동아극장 자리(중구 수창동 108, 109번지)는 현재 공구상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극장 건물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 상인들은 일부 업체들이 북구 검단동 종합유통단지로 옮겨가는 바람에 상경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목조각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유대현(55)씨는 이 장소에서만 23년째 일하고 있다. 조각도를 들고 나무 조각에 열중하며 말을 아끼던 유씨는 이 거리의 옛 시절 이야기를 묻자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그는 60, 70년대는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배어있던 거리였다고 회상한다.

"당시에는 극장 안 왼쪽에 경찰관이 앉는 임검석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지만…. 극장 앞에서도 종종 재미난 소동이 벌어졌지요. 학생들이 까만 교복을 입던 시절 몰래 사복을 입고 가발을 뒤집어쓰거나 빡빡 깎은 머리를 드러낸 채 군인행세를 하고 극장에 들어가려다 걸려 혼나는 풍경도 자주 볼 수 있었고…. 재미난 시절이었죠."

그 시절 이 일대는 인근의 자갈마당이 성업 중이고 맞은편 달성공원 옆길로 술집들이 즐비해 술꾼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구골목에서 영업하려 해도 점포를 얻기 힘들 정도로 거리에 활기가 넘쳤다. 연초제조창 직원들 수백 명까지 퇴근 후 몰려들면 거리가 사람들로 붐볐다.

"당시 이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지. 대구·국제·아카데미 등 일류 극장들은 주로 영화를 보여줬지만 2류 극장이던 동아극장은 가수 등을 불러놓고 성인들을 위한 쇼를 많이 했어요. 수영복 쇼도 보여줬고…. 극장이 들어서기 전엔 술도가가 있었다더군요."

동아극장은 지난 87년 문을 닫았지만 건물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나이 든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일류 극장은 손잡고 분위기 내는 연인들 때문에, 이류 극장은 껌 씹는 소리 때문에, 삼류 극장은 아이들 우는 소리 때문에 짜증나서 못 간다는 말들을 하며 웃곤 했죠. 그 시절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채정민기자

- 2005년 04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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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칠성교 옛길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4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칠성교 옛길
“그땐 차선·신호등 필요없었지…”
"그때만 해도 공기가 좋았지. 저 멀리 팔공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잖아…."

대구의 북구, 중구, 동구를 잇는 칠성교는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많이 변했다. 97년 10월 확장공사를 거치면서 그 폭이 32m의 왕복 6차선 도로로 넓어졌다는 것이 외견상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세월 속에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다리를 건넜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1960년대. 칠성교 위 도로에는 차선이 없었고,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도 없었다. 저 멀리 차가 오면 건너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면 차들은 속도를 늦췄다. 파라솔 아래서 경찰관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해도 사고는 많지 않았다. 당시 시내버스는 대중의 발이었다.

아침이면 버스에 오른 학생들의 도시락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났다. 갈래머리를 땋은 머리에 빵떡 모자를 쓴 안내 차장이 문을 탕탕 두드리며 "오라이(출발)"라고 외치면 버스는 내달렸다.

중학교 때 사진에 나오는 30번 버스를 탔다는 조인출(52)씨는 버스가 반야월에서 명덕로터리를 거쳐 서부정류장, 화원까지 운행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신도극장. 그곳에는 최무룡, 신성일 주연의 '대전발 0시 50분', 신영균, 문희의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의 영화를 보러 오기 위해 몰려든 관객으로 복도까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TV나 비디오가 없던 시절, 극장은 가장 인기있는 데이트 코스였다. 다리 아래 신천은 물이 참 맑았다. 이영문(57)씨는 "어른들은 멱을 감고, 개구쟁이들은 물장난을 쳤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신천 양편 가장자리로 신천대로와 신천동로가 뚫려 대구의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지금 극장은 다른 용도로 바뀌었고, 한복입고 유학 온 아들의 반찬거리를 들고오던 시골 어머니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이제 다리 위에는 쉴새 없이 차들이 지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세월은 삶의 여유로움마저 빼앗아간 듯하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끝>

사진: 1960년대 칠성교 앞의 평화로운 풍경(위). 요즘에는 신천대로가 가로막아 다리 너머 구 신도극장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 2005년 0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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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 - 달서구 월촌마을 (대구매일신문) :: 2006/04/01 21:14

사진으로 보는 어제와 오늘-달서구 월촌마을
'전형적인 농촌 자연부락이 고층 아파트 숲으로…'

달서구 월촌마을 일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변모한 지역 중 하나. 20년 전 1만여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인구가 25만여 명으로 늘었고 1만, 2만 원 하던 땅값이 수백만 원, 도로 가 일대는 1천만 원을 호가하며 20층 이상 고층아파트가 곳곳에 숲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당시 우씨 집성촌에 살고 있던 우종희(53·우씨문중 총무)씨는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왜 이리 달라졌는지?"라며 "앞산 순환도로가 생기기 전에 이 일대는 한적한 시골농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진풍경도 많았다.

현 월배로 일대는 당시 2차로였는데 버스 등이 지나가면서 흙으로 된 갓길에 '움푹움푹' 구덩이를 파놓으면 수시로 힘센 마을 청년들이 동원돼 삽, 곡괭이 등으로 평탄화 작업을 했다. 또 이 일대는 대구시에 편입돼 있었지만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어 택시기사들이 시외요금을 적용, '웃돈을 달라!', '못 준다!'며 승객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지금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곳은 경북기계공고 1곳뿐 온통 변했다. 송현주공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은 나지막한 야산이었으며 월촌지, 지당 등 연못들도 없어져 흙으로 메운 뒤 상인동 서한, 청구아파트 등이 우뚝 솟았으며, 대서중학교 등 학교가 들어섰다.

앞산 아래 버드나무 길이 현재 앞산순환도로가 됐으며 이후 대구시 청소년수련원과 앞산 승마장 등이 건립됐다. 달서구청, 달서경찰서 등이 있던 곳은 예전 공동묘지 자리. 롯데백화점, 대구지하철공사 등이 들어선 상인네거리 일대는 온통 '논'이었다.

한편, 현재의 달서구는 1988년 서구, 남구, 달성군 등 일부 지역이 합쳐져 생겨났다. 또 그 이전에는 대구시와 달성군의 경계에 위치, 달성군에 속했다가 다시 시로 편입되는 등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달서구청 이봉호 보도팀장은 "불과 20년이지만 지금은 당시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다"며 "도시계획에 따라 잘 정비된 달서구의 발전상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사진: 오른편 큰 건물이 경북기계공고. 가운데 야산과 양측 연못은 현재 없어지고 고층아파트와 학교 등이 들어섰다.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는 현 월배로. 위쪽으로 멀리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사진 위>고층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현재의 모습.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 2005년 05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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